2주만에 돌아 온 한국에서는 만들어 낸 샘플에 대한 평가와 계속 진행을 해야 할지에 대한 품평회를 했다. 반응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2주 샘플을 조금 더 다듬고 디벨롭 시켜야만 했다.
그렇기 위해서는 2주로는 소용 없었고 나는 비자를 받아 약 한달간의 출장으로 정해졌다. 시간은 별로 없었고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만해도 베트남 비자를 빨리 받아주는 업체가 존재했다. 문의를 하고 결제를 하며 여권을 보내면 비자를 받은 후 다시 돌려보내주는 그런 시스템.
그렇게 나는 다시 출장 준비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원단 시장을 다니며 사용해야 하는 메인 원단에 대해 찾았고 공급업체와 협상을 했으며 내부 안감이나 충격 보호를 위한 폼에 대해서도 결정했다. 사용해야 하는 지퍼와 지퍼 풀러 그리고 색상과 사이즈에 대해서 결정을 했다.
나에겐 사수도 없었고 후임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걸 혼자 다 처리했다. 젊어서 가능했을까.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던 나는 다른 회사 업무들 까지 모두 처리하며 다녔던것 같다.
공장에서 진행하는 샘플링 작업은 실제로는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생산해내는 양이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에 업체에서는 최대한 도와주지만 그에 따라 금액을 매기는데 일반적인 금액과는 차이가 있다. (조금 더 비싸다는 말.)
이곳의 호텔은 조식 시스템이 없다. 그리고 보통 한국에서는 아침을 거의 먹지 않는데 이상하게 호텔만 가면 조식을 먹게 된다. 이 식당의 조식은 바케트하나와 튀긴 감자 그리고 스테이크와 베트남식 진한 커피를 주문하곤 했다.
분위기는 괜찮다. 가격이 꽤 있었기 때문인지 (그래도 한국보다 싸다) 이용객은 거의 우리 뿐 이었고 점심이나 저녁때 쯤에는 좀 있었던것 같다.
이곳의 부장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공장으로 출근하곤 했다.
백팩 1종을 개발하기 위해 방문했던 베트남인데 하다보니 종류가 늘어나게 되었다.
백팩 3종에 미니 숄더백과 작은 물건들을 보관하는 파우치까지. 이 이야기는 난 이곳에 좀 더 출장을 와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공장에서 샘플링에 매달리고 토요일까지 일하고 나면 토요일 저녁에는 호치민으로 나간다. 공장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모두 그렇게 움직이는데 이때부터 난 한인이 많은 지역보다는 1군지역의 호텔을 예약했다. 이곳의 거리를 다니며 사진을 찍는것도 좋아하고 동네를 구경하는것도 좋아했으니까.
난 보통 동물을 좋아한다. 강아지들도 좋아하고 고양이들도 좋아하고 일단 동물들이면 왠만해선 다 좋아하는데 잘 만지지는 않았다. 태국이나 베트남 등의 거리에 있는 동물들은 건들지 않는게 좋은게 큰일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물거나 고양이들을 할퀼수 있으니 조심하자.
보통 베트남은 아침 해가 일찍 뜬다. 그리고 상당히 더운데 그래서인지 아침 7시면 대부분의 상점들이 모두 오픈했고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베트남은 대표적인 모계사회라 (지금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밭일이나 바깥일은 여자들이 했다. 그리고 남자들은 카페에 앉아 카페 쑤어다 (베트남식 연유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를 부렸다. 가끔은 일하러 가는 우리가 더 열심히 사는것 같아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곳 베트남에서도 난 몇대의 카메라와 함께 랩탑과 아이패드까지 들고 다녔다. 그리고 사진의 가방에는 갈아입을 옷가지도 들어가 있기에 가방의 무게는 상당했다. 그 더위에 나는 뭐가 좋다고 이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다녔을까.
그로인해 난 허리 디스크가 없어졌다.
한번은 같은 공장에 발주를 하던 미국 사장과 호치민에서 만나기로 했다. 호치민에서 꽤 오랜 시간 거주했던 미국인인데 나에게 이것 저것 알려주기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으러 다니며 재미있었던 시간을 보냈다. 안본지 꽤 오래 되었는데 잘 지낼라나 모르겠다.
파파 박항서.
한번은 주말에 혼자 호치민을 나갔을 때의 일 이었다. 배고픔에 저녁을 먹으러 숙소에서 나왔고 동네에 있던 모던한 햄버거집을 들렸는데 밖에서는 갑자기 난리가 났었다.
길 거리는 완전 베트남인들이 쏟아져 나와 난리가 났었고 흡사 2002년 월드컵때의 우리나라의 상황과 마찬가지였다. 알고보니 박항서 감독이 23세 이하 (맞나..?) 축구 베트남 대표팀 감독을 맡았었고 스즈키컵에서 준우승이었나 우승이었나를 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대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뉴스 보도가 있었고 나는 그 현장 속에 얼떨결에 있었던 것이다.
사방에 온통 국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고 감격에 겨운 사람들의 표정에 묘한 감정을 느끼며 나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한국인이라는걸 알면 어느 펍에서든 맥주는 공짜였다고 한다. 나는 뭐 그다지 술을 좋아하지 않기에 아쉽다는 생각은 안했지만 그렇게 좋아해주고 인정해 주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그렇게 난 광난의 거리를 뚫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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